120212 작은 예수는 희망으로 삽니다  

설교 본문 : 43: 18-28

 

예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희망으로 삽니다.  희망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늘 세가지를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번 겨울의 추위는 늦게 찾아왔고, 2월에 많이 춥습니다.  이 추위는 마음도 춥게 만드나 봅니다.  유독 봄의 희망을 더 기다리게 합니다.  따뜻한 봄날이 그립습니다.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은 기독교를 한마디로 희망하는 종교라 하여 Hopnung Theologie g희망의 신학을 말합니다. 

 

소망 중에 최고의 소망은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곤고하여도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이 이 땅에서 이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3의 파도라는 귀한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엘빈 토플러입니다.  그가 책 서문에 이렇게 씁니다.  이 책은 시대가 어둡기에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역사가 이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고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 책을 씁니다.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의 행위는 희망 때문에 이루어진다. 농부가 옥수수 씨앗을 심는 행위는 가을에 열매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열매를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떤 농부도 씨를 뿌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업가는 이익을 소망한다.  이익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아예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 제가 이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도, 하나님에게 향한 소망으로 이 땅을 이기시기를 소망하기에 오늘도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릭 프롬, 이름 들어 보셨지요? 유명한 사회 심리학자이잖아요? 그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희망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즉 희망이 끊어진 인간은 살아갈 용기를 빼앗긴 자요, 살아 있으나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대에는 죽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절망한 무리가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인 지독한 전쟁 가운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6.25 같은 전쟁도 전쟁이지만,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가난과의 전쟁도 전쟁이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처절한 전쟁은 절망과의 전쟁입니다.  절망하면 죽습니다. 자살합니다. 생명을 끊습니다.  문제는 현대인들 바로 우리들이 너무 나약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절망합니다.  절망과의 전쟁, 정말 심각한 전쟁이요, 그러나 우리가 꼭 이겨야 하는 전쟁입니다. 

 

오늘 축복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향한 소망으로 이 땅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절망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  사탄이 악한 세계의 왕초이고, 부하를 성경은 마귀라 부릅니다.  왕초 사탄이 부하 마귀들에게 물었답니다. “인간을 망가뜨리고 파괴시키는 가장 좋은 무기가 무엇이냐?”  그랬더니 첫마디가 황금요,  물질을 숭배하는 물신 사상을 집어넣으면, 즉 돈이 최고라고 믿게 하면, 친구 사이 다 갈라지고, 부부관계도 깨지고, 형제 관계는 물론이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다 깨질 것입니다요.  다른 마귀는 술이요, 다른 마귀는 마약이요, 권력이요,  남자들을 홀리는 예쁜 여자들이요, 성적 중독이요, 도박이요, 질투요, 미움이요 증오요,  등등의 대답이 쏟아 집니다.  다 듣고 난 후, 악의 제왕인 사탄이 말합니다.  좋은 무기들이다.  그러나 최고의 무기는 아니다.  인간을 파괴시키고 망가뜨리는 최고의 무기는 절망이다.  그러더니 도끼 하나를 보여줍니다.  이 도끼로 많은 사람을 망가뜨렸다는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줄이 보이기만 하면 끊어 버렸더니 인간은 망가지더라는 것입니다.  다 사탄의 밥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빅토를 프랑클 하면 유대인 정신과 의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특별히 2차 대전 때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사람으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감옥의 경험이 그의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같이 갇혀 있는 사람 중에 유명한 음악 작곡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다가 오더니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 문이 3 30일이면 열려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현인의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는 희망차게 살아 가더랍니다. 사실 이 때 독일이 밀리던 때 이었습니다.  4 30일 히틀러는 자살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5 7일에 독일은 완전히 항복합니다.  그런데 수용소에는 변화가 더디 옵니다.  3월 말이 다 되어 오는데도 수용소 문이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작곡가의 마음은 자꾸 초조해졌습니다.  드디어 29일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작곡가 양반이 고열이 나더니 쓰러져 버렸던 것입니다.  다음날인 30일에는 의식을 잃고 횡설수설하더니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발진티푸스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빅토르 프랑클은 이 사건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병원균이 몸에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  희망은 몸 속에서 활발한 면역 기능을 만들어서 모든 병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한 몸에 들어온 조그마한 세균도 큰 힘을 발휘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은 생명이다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저는 이사야 43장을 본문 말씀으로 붙듭니다.  18절에서 28절의 말씀입니다.  [펴시지요]

이 말씀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한 백성입니다.  바벨론의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고생합니다.  이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 요즈음 말로 하면 목사를 보냅니다.  그러더니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위로와 희망이 그의 설교의 주제입니다.  잠깐 40장으로 넘어 갔다 오십시다. 1절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제 고생이 끝났다 라는 것입니다.  이제 43장으로 넘어 가 봅니다. 19절입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서가 66장인데, 바로 위로와 희망은 이사야서의 중심 주제입니다. 눈물 흘리는 백성에게 가서 위로하라는 명은 받은 자가 이사야 선지자요,  참으로 아픈 절망 속에 있는 백성에게 희망을 선포하랍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에 주목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  용서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는 희망의 길을 막고 있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를 먼저 거두어 내야 했습니다.  새 일을 행하기 전에 주님은 용서를 먼저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원칙은 단 하나 은혜입니다. 

세상의 잘난 사람들을 통해서 새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같이 못난 사람을 용서하셔서 쓰시겠답니다. 용서하시고 고치셔서 쓰시겠다는 것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심 대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죄 많고 쓰러지기 잘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랍니다. 

수재 천재 모아서 새 일을 행하리라 가 아닙니다.  못난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셔서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망을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 새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키시어 주님의 새 일로 초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정결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자들을 불러 모아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가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럽혀진 자들을 주님의 피로 씻기시어, 새롭게 하시고 재 창조하시어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 믿음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신비요 믿음의 신비입니다.  그 때 용서하시고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답니다.  그 용서의 체험이 있고서야 우리는 희망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용서란 잊어버려야 용서입니다.  기억하면 용서가 아닙니다.  Forgive 뿐만 아니라 forget 이 되어야 용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외치신 것입니다.  25절에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우리의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더 은혜가 되는 것은 기억하지 않으신다 하십니다.

그런데 불쌍한 사람들이 참으로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하나님도 기억 못하는 죄를 악착같이 가슴에 품고 상처로 사는 사람 보면, 기가 막혀요.

그런데 왜 여러분은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까?  하나님도 기억하지를 아니하시는 죄를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붙들고 계십니까?  희망의 선봉장이 되고 새 일을 행하시렵니까?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기억 못한다니까요!  하나님의 용서를 믿으셔야 해요.  그래야 거기에 치유함이 있어요.  하나님도 기억하지 못하시는데 왜 여러분은 그 죄를 잊지 못하고 왜 벗어나지를 못하세요?

[묻습니다] 여러분 죄가 있으세요?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 못하신답니다.  나는 나를 위하여 너희 허물을 도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잘못된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새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18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나도 잊어 버렸으니 너도 잊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년에 있었던 실패의 경험을 더 이상 기억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과거의 아픔을 이제 보내세요.  더 가슴에 두지 마세요.  하나님이 용서하셨데요.  그러면 충분하잖아요!

영국에 어느 정신병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95%가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선포합니다. 베드로전서 4 8절 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죄를 덮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반대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들춰냅니다. 마귀는 우리 과거의 실패를 자꾸 들춰냅니다. 처녀시절에 실수를 들춰냅니다.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것을 자꾸 생각나게 만듭니다. 이전에 쓰라린 경험이 자꾸 나를 꽁꽁 묶어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희망의 자리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가 없게 합니다.  들추어 내는 마귀의 노예 되지 마세요.

한 마을에 어린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폐쇄된 철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철길을 건너가다가 중간쯤 가서는 밑을 내려다 보고 그냥 어지럼증이 생겨서 가끔은 엉금 엉금 기어서 건너 간답니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예외이었습니다.  철길을 너무 자신만만하게 건너는 겁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이 아이가 저처럼 배가 통통하게 나왔거든요. 그 배 때문에 밑을 내려다 볼 수 없는 거에요.  그러나 그냥 앞만 보고 걸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철교 다리를 잘 건넌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 다시 돌아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려다 볼 필요가 없고 뒤 돌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가 이제 새 일을 행하리라,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쓰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은 사람을 쓰십니다.

12년 동안 피를 계속하여 흘리는 병으로 고생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병으로 재산을 날립니다.  병도 못 고치는 의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남편이 가까이 오지를 아니합니다.  절망했습니다.  눈물 많이 흘린 여인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 옷자락을 만지게 합니까?  소망입니다.  그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만 하여도 그 병이 나으리라는 소망입니다.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발랄하고 예뻤던 딸이 갑자기 귀신이 들린 것입니다.  아무데서나 옷을 벗고 뛰며 침을 흘리며, 완전히 미쳐 버린 것입니다.  집안에 절망의 분위기 입니다. 그 딸을 예수님에게로 데려옵니다.  무엇이 그 귀신 들린 딸을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오게 했나요?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미국에서 청년들이 연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리아 마르다 오빠인 나사로의 죽음을 주제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에게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후로 바꾼 생각이 있느냐?  나사로의 대답입니다.  죽음이나 절망을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웠소.  내 안에는 예수님의 희망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찬송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말 중에 제 가슴에 살아서 늘 용기를 주는 말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이 저 불광동에서 40년 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가마니 깔고 뚫어진 천막 치고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막이 새는 것은 물론이고, 예배를 드리러 온 성도의 수보다, 천막 안으로 기어들어온 개구리 수가 더 많았다 고 회상하곤 합니다.  그 악조건 속에서, 조용기 목사님은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절망의 환경 속에서 절대 희망을 붙들고 선포한 것입니다.  한번 우리도 되뇌어 봅시다. " 수 있다. 하면 된다.  보자!"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합니다. 

 

한때 스페인 영에 속해 있던 리스본 도시, 지금은 포르투갈의 수도입니다. 이 항구 도시에 해안 마지막 끝나는 곳에 큰 암석 바위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답니다.  이제는 끝입니다. 이 넘어 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There is nothing behind. 그런데 1492년에 한 사나이가 이 항 구에서 자그마한 배에 오르면서이렇게 외칩니다.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는 끝이 아닙니다. 이 너머에는 위대한 희망의 세계가 있습니다.  사나이 이름이 바로 크리스토퍼스 콜롬버스 입니다.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페스트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절망한 유럽인에게 희망을 준 것입니다.

희망의 사람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기쁜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요, 희망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누가 새 시대의 선구자가 될 것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학력 높은 사람, 좋습니다.  머리도 좋은 사람, 쓸모가 있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사람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이 승리자요, 성공자요희망이 있는 사람이 행복자요, 희망이 있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이러므로 희망의 사람은 환경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환경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절대 절망의 환경을 절대 희망의 환경으로 바뀝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비밀을 알고 그 신비로운 힘이 있습니다.  나도 성공하고 남도 성공하게 합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보다 내 일이 잘 될 희망, 금년보다 명년이 더 잘 될 희망, 우리 세대보다 우리 자손 세대가 더 잘 될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46 5절에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크리스천이 절망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힘이 없다고 낙심하는 것은 힘의 원천인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나에게 과거의 죄가 있다고 포기하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내 허물을 도말하리라. 기억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행하리라.  내 반드시 희망의 백성으로 기쁨의 찬송을 하게 하리라.

 

[기도하십시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고 또 우리의 삶이 전보다도 더 훨씬 피곤하고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 에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향해 손을 펴시는 주님, 그 분의 말씀을 들으세요.

얘야,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하나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좌절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허락하신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우리의 죄악을 이제는 더 기억하지 않겠습니다. 소동하거나 방황하지 않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찬양하며주님의 길을 걷게 해 주옵소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그리고 이 땅의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이 희망으로 내 인생을 설계하게 하시고 도전하게 하옵소서.  이 희망으로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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