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글 수 126
120129 예수님의 사람은 포기를 포기합니다
[욥 1:1] [현대인 성경]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진실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요즈음 강용우 박사님, 정말 작은 예수의 본을 보이신 강용우 박사님의 이름이 믿는 자들의 입에 많이 오르 내리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 사람으로서 그것도 맹인 박사로서
부시 행정부의 차관보를 역임했다 해서 사람의 입에 오르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췌장암 말기에 걸립니다. 그런데 치료를 거부합니다. 죽음도 삶에 일부분이라며, 그
동안 하나님께서 충분히 축복하셨다고 하면서, 죽음을 환한 미소를 받아 드리면서, 주머니에 남아 있는 재산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삶에서, 그가 남긴
말이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작별할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용우 박사님의 삶을 보면, 정말
강용우 박사님은 작은 예수이셨구나 라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가 여러 권의 책을 쓰셨는데,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 끝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이지요.
중학교 3학년
때에 친구가 찬 축구 볼에 맞아서 실명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불과 8시간 만에 어린 강용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는 더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납니다. 갑자기 인생 최대의 역경으로 떨어집니다. 절벽 아래로 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그 때부터 그는 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정말 날라 올라 이런
말까지 남기게 됩니다.
맹인으로 살아 가면서의
앞을 못 보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눈뜨고 앞날을 못 보는 사람들을 안내 할 수 있었다”
한 두 달 남은 것이 그의 마지막 생명인데, 가족들에게 웃음을 보냅니다. 고마웠다고, 아내에게 웃음을 보냅니다. 사랑한다고, 하나님께 웃음을 보냅니다. 감사했다고, 그리고 죽음까지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질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왜 이렇게
많은 고난이 올까요? 마치 한 겨울의 모진 추위가 찾아 오는 것 처럼,
왜 이 인생을 살아 가는 길목마다, 그런 살을 에이는 어려움이 찾아 올까요?
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주님에게 참으로 많은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기도 했지요.
왜 입니까?
왜 입니까?
이렇게 어려운 고난을 연약한 제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작은 연한 풀잎보다도 못한 저보고 어떻게
이 큰 고통을 이겨내라고
무슨 잘못을 했나요? 이렇게 비통한 아픔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요?
왜 입니까?
왜 이렇게 울게 하십니까? 왜 이렇게 신음하게 하십니까?
이 고통은 언제까지입니까?
이 고통이 주님의 눈에는 아니 보이십니까?
이렇게 이 아들이 이 딸이 힘들어 하는데
왜 외면하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언제까지 침묵하실 것입니까?
이렇게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강용우 박사님의
또 다른 한 어록이 들려옵니다.
암보다 무서운 것은 포기 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또 남깁니다.
Impossible
(할 수 없다, 못한다, 불가능하다) 이 말에 점 하나만 찍어보라 점 하나만
I’m possible
(나는 할 수 있다)
불가능을 이길 수 있고, I’m possible, 고통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I’m possible
아니 이 고난이 축복으로 가는 길목의 한
고개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고난만 넘으며, 그 고통만
견디면 그렇게 축복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한다는 오늘
말씀입니다. 인내가 무엇입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적어도 이 일곱 가지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집니다
1. 고난이 험한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날 징표입니다
2. 때때로 고난은 인생의 지름길이 된다
3. 육적 고난 속에서 정신적인 부요가 피어난다
4. 고난 없이 얻는 승리나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5. 고난은 선한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6. 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다
7.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사람을 돌보신다
무슨 말입니까? 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는 포기를 포기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주인이 3년 동안 무화과 나무에게 찾아 옵니다. 열매를 맺어나 보시고 그 열매를 취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어요. 땅만 버리고 있다 합니다. 아무래도 찍어 버려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농부 즉 예수님이 무엇이라 합니까?
[눅 13:8]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제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현대인
성경]
포기 대신에 주님은 “한 해 만 더”를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예수인 우리도 포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을 사랑합니다. 말씀은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우리가 압니다. 욥이 얼마나 큰 고난을 당했는지, 재산이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납니다. 자녀
10명을 한 순간에 잃어버립니다. 몸에 지독한 병을 얻습니다. 아내의 저주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욥은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투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그리고 그냥 견디어 냅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고,
우리 옆 사람에게 인사합시다. 격려합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기까지 인내합시다.
욥을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신학자들이 고난의
사람이라고, 아니요 저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부를 수가 없습니다.
욥은 지독한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은 성령, 예수의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저는 이렇게 다시 외치고 싶습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한 역사 학자의 글입니다.
콜롬버스가 항해를 포기 했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포기했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어려움은 우리 신앙의 큰 주제입니다. 그런데 어떤 어려움은 이해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은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이해 불가능한 어려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가 유일한 방법입니다. 끝까지 오래 참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고난의 먹구름이 걷히고 나면, 그제서야 고백하게 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고.”
오늘 말씀으로 하면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우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고
복된 결말을 본 승리자 이것이 욥의 인생의 주제입니다
아들과 함께 본 영화 입니다. 그 한 대목이 너무 감동적이었는데, 제가 감동을 느끼면 다른 사람도 같은 감동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영화 제목은 Facing the
Giants 입니다. 한국
제목으로는 믿음의 승부로 Youtube 라는 동영상 매체를 통해서 그 부분을 편집해 놓았더라구요. 그 부분을 보면 욥의 고난을 보는 듯
합니다. 미식 축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
한 코치가 선수들에게 외치는 한 마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Don’t give up!
최선을 다해보라고 do your best.
동영상을 보십시다
포기를 끝까지 하지 말라 말도 귀합니다만, 대사 중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리서쉽의 은사를 주셨단 말이야” 네가 이긴다고 하면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다고,
브룩이라는 선수 옆에 끝까지 같이 가면서
걸어가다가 같이 기어가면서 무엇이라고 계속 외칩니가?
계속 가라고 keep going.
최선을 다하라고, do your best
포기하지 말라고 don’t give up
중단하지 말라고 don’t quit
한발 자국만 더 가보자고 one more step!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브룩이 욥과 같고
코치가 하나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는 욥의 옆에서 같은
고통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응원하십니다.
욥아 포기하지 마라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거라
중단하면 안돼
이 고난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돼
이제 이 고난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 만 더! 조금 만 더!
처음부터 눈가리게 가려서 얼마를 가는지를
모르게 합니다. 그렇게 가게 하더니
그 눈가리개를 풀면서 너는 50야드를 온 것이 아니라,
end-zone 끝까지 왔다고 끝까지 온 거야, 동영상을 함께 보았는데, 하나님이 끝이라고 할 때까지 하나님의 우리의 고통의 눈가리개를 풀어 주실 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선한 싸움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 미움 대신 사랑의 경주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너도 엔드-존 끝까지 왔다고 주님이 말씀 하실 때까지요,
너도 결말을 보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음성을 들을 때까지요, 우리는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만큼 밖에는 할 수 없어요, 글세 등에 없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50야드 갈수 있다고 우리 한계를
우리가 미리 정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한계를 미리 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옆에서 응원해 주시면, 비록 눈 가리개가 가리워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우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그 결말을 보았다고”
이 고통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의
결말을 보기까지 작은 예수는 포기 하지 않습니다 작은 예수인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고난의 끝이 지금 여기서는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짐작도 안되고, 추측도 안돼요. 그러나 주님의 응원의 음성을 들으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계속 가라고 하루만 더 참아 보라고 한달만 더 참아보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제가 전폭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행복한 결말 –제가 행복한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결말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후배에게 아들과 같은
후배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 2:12] 우리가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따라 합시다 그 분과 함께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 보십시다. 석양의 인생관이십니까? 아니면 일출의 인생관이십니까? 지는 해처럼 어깨를 떨어뜨리고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주님과 함께 솟아 오를 희망과 용기로 사십니까? 를 지금
제가 심각하게 묻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하지요. 죄를 여러 가지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다른 정의를 지난 주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죄란 이 가슴 안에 하나님의 부재이다. 죄의 반대인 의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부재입니까? 하나님의 임재입니까?
하나님이 이 안에 아니 계시면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고독하게 됩니다. 섞게 됩니다.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안에 임재하시면, 방향이 분명합니다. 따뜻합니다. 힘이
납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끝가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의 인생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임재의 생이어야 합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울 때, 그래서 이제 다 내려 놓아야 하겠다고 포기할 때, 하나님의 임재의
신앙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한
걸음만 더 one more step!”
혹 당신의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답답해 하십니까?
지연되는
것은 거절 되는 것이 아닙니다. (A delay is not a denial!)
내가
주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While I am waiting, God is working)
그래서 포기에 익숙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끈기에 익숙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위로합니다.
[사 49:23] 내 도움을 기다리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
성경]
그래서 본문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고난이 올 때, 왜 이 고난이 왔는가 너무 심각하게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참고 인내하고 견디고, 한발자국만
더 견디어 보는 겁니다. 나는
반드시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겠다, 지금은 사방을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어도, 주께서 주실 그 결말을 보기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차라리
끈기를 택하지 포기는 포기할 것이라고, 그렇게 사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을 아시면, 이것을 믿으면 신앙이 강력해 지고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내가 요만큼 아프십니까? 하나님은 이만큼 아파하십니다
내가 요만큼 힘듭니까? 하나님은 이만큼 힘들어 하십니다
내가 요만큼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은 그 눈물 때문에 이만큼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외치십니다.
동영상의 후반부를 다시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응원하시는 음성으로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동영상 후반부
다 포기 하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우리를
영광의 결승선까지 이끌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나요? 그 행복한 결말을 맛보게 하시기 전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 지시기를 축복합니다.
한 발자국만 더, 하루만 더, 그렇게 참고 견딘 사람을, 인내의 사람을 우리는 복되다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께서 주신 결말은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클린튼 하우엘의 시 ‘포기하지 마세요” 로 마감합니다. 주보에 목회 단상에 이 시를 소개했으니 시간이 될때마다 읽으시고, 주께서 주시는 결말을 보시기 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 작은 예수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때때로 그렇 듯 일이 잘못 될 때,
앞에 언덕길만 계속 되는 것 같을 때,
주머니 사정이 나쁘고 빚이 불어날 때,
웃고 싶지만 한 숨만 나올 때,
근심이 마음을 짓누를 때,
쉬어야 겠다면 쉬세요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아요
때때로 그렇듯 인생이 풍파로 얼룩질 때,
실패에 실패만 이어질 이어질 때,
잘하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을 때,
걸음을 늦추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요
한번만 더 해보면 성공할지 모르니까요
힘들어 머뭇거려진다면 기억하세요.
목표가 보기보다 가까이 있는 때도 많다는 것을,
승자가 될 수 있었는데 노력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요.
금관이 바로 저기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
이미 슬그머니 밤이 온 후에야
성공은 실패를 뒤집어 놓은 것,
당신은 성공에 가까이 다가 왔지요
멀리 있는 듯 보이지만
성공은 가까이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 너무 힘들 때도 끈질기게 싸워요.
최악으로 보이는 상황이야 말로 포기하면 안되는 때이니까요.

